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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회계사 이야기 Part4

회계사 아빠

by 점쟁이회계사 2023. 8. 1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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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병아리 회계사 일 배우기

첫 필드는 어느 외국계 감사 법인이었다. 나의 사수는 그때 H씨(알고보니 고등학교 친구의 대학교 선배누나)였는데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었다. 어리버리 타다가 뭔가 같이 택시타고 나가긴 했는데 처음이니 큰 일 시키진 않고 그냥 현금 계정 맡기더라.

아 여기서 "현금 계정을 맡겼다" 라는 단어를 썼는데 우리 회계사들에겐 너무 익숙한 단어지만 혹시나 이 글을 보는 비전문가가 있을지 몰라 간단히 개념 정리를 하고 가겠다. 법인 그러니까 회사가 장사든 뭐든 하게 되면 가계부를 적어야 하는데 이 가게부에 쓰는 명칭을 계정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어디에 100만원을 주는 일이 생긴다면 개인인 우리는 가계부나 일기장에 "100만원을 공인중개사에게 일한 대가로 줬다" 라고 쓰겠지만 법인은 정해진 명칭으로 간결하게 써야한다. 아래처럼...

"현금" (-)100만원 [ "지급수수료"]

(실제로는 차변과 대변이라는 곳에 각각 "수수료비용 100만원/ 현금 100만원" 이렇게 써야하지만 일단 넘어가자 이 책의 취지와는 맞지 않으니)

이 정해진 명칭(위 거래에선 "현금"과 "수수료비용")을 계정이라고 한다. 이런 거래가 수백 수천개 쌓이게 되면 그 계정 기록이 겁나 쌓이게 되고, 다시 이 계정 기록을 모아서 재무상태표(BS: 쉽게 말해 내가 가진것과 남에게 줄것을 모은 기록)와 손익계산서(PL:쉽게 말해 나의 실적을 모은 기록)를 만들게 된다. 이를 감사인에게 보여주면서 "우리 기록이 이런 데 확인해주고 도장 좀 찍어줘, 안그러면 다른 애들이 우리 보고서 잘 안믿는다" 라고 해서 우리가 그 자료를 보는데 전체를 보기 힘드니 서로 계정을 나눠서 이건 니가 보고 저건 내가 보자 이렇게 분업을 해서 일을 한다

보통 신입은 가장 쉬운 계정인 현금을 담당한다. 현금은 그냥 회사가 "우리 100만원 있어요" 라고 자료 주면 은행에 조회서 라는 편지(요즘은 메일로 한단다) 보내서 확인하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에 간 곳도 그런 종류의 현금이었고 별 어려움 없이 마무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쓰고 보니 너무 날로 돈 번거 아니냐고 할것 같다. 이제 삐약이 회계사 입장에서 힘든 점이 뭐가 있는지 디테일을 추가해보자

  • 선배들의 표정이 썪어있을 수 있다: 나만 현금 계정 맡아서 편하지 2년차 3년차 들은 이미 일이 많다. 저번 주에 필드웍 갔던 회사들에게서도 메일이 잔뜩 오고 처리해야 할 업무도 태산이다. 분위기 잘 봐야 해서 궁금한게 있어도 질문하기가 좀 그렇다(이건 사람,팀마다 케바케이긴 하다만 내 첫 감사에선 그랬다)

  • 준비물을 잘 챙긴 건지 모르겠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다만 필드웍 첫날에 캐리어 만한 가방을 막내가 챙겨가야 한다. 보통 OJT(신입사원 교육)할때 알려주긴 하지만 몇번이고 계속 챙겨보게 된다(깜빡한건 없나 하고)

  • 전기 조서가 이해가 안 간다: 보통 미리 이전년도 회계사가 쓴 기록("조서"라고 한다, 보통 엑셀로 작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어서 그걸 참고하고 가는데 내용이 어렵거나 영어로 되어 있으면 일단 긴장감이 엄습해 온다. 제일 짜증나는건 값복사로 되어 있어서 이 인간이 무슨 이유로 이 숫자를 넣어놨는지 알 수 없을때다. 어떤 때는 전년도 조서를 딱 열었는데 엑셀 가운데 리드싯("전년도 숫자, 올해 증감액, 최종 올해 잔액"을 간단하게 적은 표)이 거대한 황금 십자가 안에 들어가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후에 그 조서 작성한 신입은 "전설의 골드 크로스"라고 놀림을 받게 된다)

  • 잡일이 너무 많다: 나 때는 은행조회서,채권채무 조회서라고 은행이나 기업체에 우편물을 보내 "내가 감사하는 이 회사가 귀사에 받을 돈이(혹은 낼 돈이) 얼마 있다는 데 맞나요?" 라고 확인하는 양식이 있었다. 당시엔 이메일,스캐너가 다 갖춰져 있는 상황에서 이걸 굳이 우체국을 통해 보내는 게 좀 어이없기도 하고 이 별 볼일없어 보이는 잡일에 고학력자를 대거 투입해 어마어마한 공수를 투입하는 현실에 의아했다. 하지만 걱정안해도 될게 요즘은 다 회계사가 아니라 별도 인력이 메일과 스캔너로 확인한다고 한다....만 그래도 어딜 가나 막내는 힘들다

  • 기타 야근이 많다. 상사가 또라이다 라는 것들도 있지만 어느 회사에나 있는 공통적인 문제점(전문용어로 고정비, 공통비라고 한다)이니 쓰지 않겠다

쓰고 보니 별로 힘들어 보이진 않는다. 맞다 별로 힘들 거 없다. 여러분은 그냥 삐약거리면서 열심히 할거 하고 패기 보여주고 하면 된다. 기본기에 충실하면서 최대한 클라이언트와 선배들에게 믿음을 심어줘라. 2년차가 되면 이직할텐데 뭐 그렇게 할 필요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회계법인 인맥과 네트워크는 여러분이 어딜 가던 큰 자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계법인 상무도 될 확률은 낮지만 한번 쯤 트라이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시도이니....

첫 필드 가서 현금계정 맡았다는 것이 말이 너무 길었다. 참고로 이 회사는 11월말이 결산인 곳이라 그렇지 이 회계사 병아리는 아직 재고실사도 나가지 않았다. 재고실사와 본격적인 감사업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후술하겠다

 

[Question Time]

Q. 보통 회사 감사 나갈때 몇 명이서 나가가요?

A. 정말 작은 회사면 2명이 나가고 아무리 큰 회사라도 6명을 넘기는 경우 잘 없는 것 같다. (미국 영화보면 Accountant 라는 멋있는 사람 한명 나가서 일을 하는 경우도 있던데) 경우에 따라서는 필드(= 감사하는 회사 사무소를 의미) 나가지 않고 본사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메일로 자료 받으면 되고 구두로 물어볼 건 전화로 해도 되긴 하니까 상관 없다

Q. 초반에 어리버리하면 상사한테 혼나기도 하나요?

A. 서로 전문직이라 인정해주는 분위기라 그렇진 않는다. 내 윗 기수 선배들은 상무들이 던진 재떨이 맞았다는 적도 있던데 요즘 시대가 바뀌어서 그러면 큰일난다.

Q. 주로 무슨 프로그램을 쓰나요? 컴퓨터 자격증 같은 거 필요한가요?

A. 90% 이상 엑셀로 한다. 100%라고 쓰지 않은 것은 나중에 짬이 좀 차면 제안서 쓸때 PPT를 쓰기도 하고 회의자료는 간단한 워드파일을 쓰기 때문이다. 자격증 있으면 좋겠지만 업무에 도움이 되진 않아서 비추한다. 오히려 그 시간에 엑셀 단축키 하나라도 배우는게 좋겠다만 이 역시 들어와서 닦이다 보면 자연스레 터득하게 되니 미리 준비할 필요 없다

Q. 경영학과를 나오는게 일에 도움이 되나요?

A. 잘 모르겠다. 경영학과는 그냥 멋있어 보려고 딴거 아닌가 싶다. 물론 필요한 부분도 없지 않은데 그렇게 미리 공부할 필요 없는 분야라....오히려 책이나 뉴스 같은 것을 많이 보고 사회와 산업에 대해 폭넓은 지식,이해를 가지면 좋을 것 같다. 감사라는게 회사와 회사 사업을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하니까....아 그리고 공대나 생명공학 이런 전공을 한 분들은 입사할때 크게 유리하긴 하다. 이 쪽 이해가 높은 회계사가 필요한 일이 많은데 공급이 하도 없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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