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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신입회계사 Part 1. 합격이라구!

웹소설: 55세신입회계사

by 점쟁이회계사 2023. 9. 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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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hters of the night .Assemble!"

한여름 밤, 어두운 방 안에 용맹한 장수의 목소리. 내가 오늘 8시간 연속으로 콘트롤 해온 히어로다. 방안은 갇혀진 습기로 꿉꿉하고 마우스는 인내심 있게 내 손가락질을 받아쳐내고 있지만 내 영혼에는 그렇게 인내심이 없었다.

"아 진짜 게임 x 같이 하네"

온라인에선 무한한 마법을 연구하는 젊은 20대 청년 같아 보이지만 현실에선 뭔가에 도망치려는 듯 게임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누가 봐도 게임 폐인처럼 보이겠지만 집안에서 누구도 나를 뭐라하지 않는다. 지금 내 사정을 알기 때문이다.

24년....인생의 거의 22할 이상을 놀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다. 엄마 품을 떠나서 20년간은 대학교를 간다고 공부했고 대학교에 와선 남들 다 노는 1학년때 입대를 바로 하고 3학년부터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며 살아왔다. 1차는 운 좋게 붙었고 당연히 동차는 실패했었다. 이후 2차 유예 시험을 본지가 몇주전이다. 당연히 누구도 나를 뭐라 할 수 없다. 나는 24년 거의 반반백년동안 남들 놀때 놀지 않고 충분히 노력했으니까

노력은 좋았는데 이상하다. 보통 열심히 노력하고 시험을 보고 나면 "후련함"이 느껴졌는데 지금 머릿속에 또아리고 있는 것은 불합격에의 공포다.  내가 봐온 보통의 시험은 못보면 못본대로, 100점이면 100점짜리 대학이, 80점이면 80점까지 결과가 있었는데 이 시험은 잘보면 좋고 못보면 그냥 나락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번 더 떨어지면 그 지옥같은 2년의 시험기간을 더 이상할 자신이 없다.

1~2년 공부 더 하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일은 아니다. 무서운 것은 1~2년 동안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 일본 만화에도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것이 죽음이라고...난 그 말이 뭔지 지난 2년간 뼈저리게 느꼈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게임을 너무 했더니 심장이 아프려고 하지만 내일이 2차 합격자 발표날이기에 더 맨정신으로 못 있겠다. 오늘은 새벽 4시전에는 자야지 하고 다른 게임을 좀 켜본다. 오 "서툰어택" ....이건 안구 "운동"이 좀 되니까 괜찮겠지?

다음날

발표날이다.발표 시간이 되기 까지 침대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가 겨우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아이씨 왜 이렇게 버벅이는 거야"

합격자 발표 조회 트래픽이 몰려서 사이트가 뻑이 났다. 공인회계사 수험생 카페를 보니 회계사 학원에서도 합격자 명단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그 쪽으로 가서  겨우 명단을 볼 수 있었다. 

"신이시여 제발...."

합격자 발표 명단을 본다 

2...0...1...

 

내 이름이 없다.

두번 세번 찾아볼 것도 없다

내 이름과 비슷한 이름도 없다. 이름을 잘못 봤을리도 없을 정도로 확연하게 없다 

 

"하"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슬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 생각이 안난다. 역시 난 T인가. 다시 어떻게 시작할지 감이 안온다. 

"어떻게 ? 합격했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뒤통수를 때린다. 대답대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조용히 방을 나가신다 

"어 ~ 여보 ~ 우리 근원이 시험 떨어졌데"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전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는 저녁에 또 무슨 면목으로 보지....격려하시긴 할테지만 분명 아쉬워 하시겠지'

내심 이런 저런 향후의 일을 시뮬레이션 하는 찰나에 친구 놈이 전화가 왔다. 이 녀석도 회계사 공부하는 녀석인데 놀리려고 한건가 ?

"여보세요"

"야 근원아 축하한다"

이게 뭔 쌉소리지....탈락한 애한테 축하라니

"뭐...뭐라고?"

"축하한다고 임마 2차 합격"

자자자자...잠시만. 다시 사이트를 확인해보자 

이런 씹....내가 본건 작년 합격자 명단이잖아

올해 합격자 명단을 다시 접속해서 보니....내가 있다 !!! 내 이름이 있어 !!!!

 

"호에에엥~~~~~~!"

무슨 일이냐면서 달려온 엄마가 달려왔다

"엄마 내가 잘못 봤었네 나 합격이래"

어머니가 마루로 달려가시더니 웃으시면서 아이언채를 들고 오셨다

"이노무 새끼가 일루와 일루와"  

퍼터로 맞아도 괜찮다. 나는 이제 자유다. 이제 난 더 이상 공부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책은 들여다 보지도 않을 것이다. 전도서 12장 12절에도 그렇게 나와 있지 않은가..."공부는 하면 할 수록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라고.. 아멘 할렐루야. 전 이제 좀 안피곤하게 살게요

 

하지만 3달 후 누구보다 피곤하게 살 거라곤 이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3달뒤]

"난 누구 여긴 어디"

누구긴 누구야 자랑스러운 한국공인회계사지....어디긴 어디야 역전앞 맥주집(2차)지

"김 쌔엠... 취한거 아니죠"

"아앗 예 그럼요"

이 분...아니 이 녀석은 내 사수다. 나보다 1년 먼저 입대한 남자 선임이다. 참 술을 좋아한다. 술을 먹어야 잊혀지는 뭐 그런 괴로움이 있는 분인가. 오늘 중간감사 끝나고 첫 팀 회식 자리인데 뉴스텝(신입)이 들어와서 함께하는 첫 회식이라 더욱 흥이 나 있으신 듯하다

"아직 11시인데 아쉽다...3차 가실 분?"

민주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인데 선뜻 거절하기 쉽지 않다. 내가 뭐 대학교를 스카이나 하버드를 나오고 집안이 빵빵하면 모를까 그냥 모든 것 하나 평범한 스펙이고....그런 것을 다 떠나 너무 신세를 진게 많기 때문이다. 합격후에 머리가 싹 포맷되어서 기준서가 생각이 안나는 것을 보면 객관적으로 나는 그렇게 똑똑한 편이 아닌 것 같다. 그런 머리로 일을 하려니 자연히 선임에게 많이 물어보면서 의지하게 되었고 채무 의식이 생겨서 거절하기가 힘들다 

"네 저 가겠습니다"

"쌤~ 오 패기가 좋아"

패기가 좋다는 말은 다른 것은 안 좋다는 말인걸까. 회사 생활이 자신감이 없으니 이런 것도 삐딱하게 들린다. 

"저는 일이 있어서 이만"

"아 그래 그래 가봐요"

몇몇 용자들은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떴다. 뭐 저분들이야 혼자 능력으로 잘 하는 분들이니까. 기타 여성 동기들은 어느새 다 술자리에서 도망가고 이게 신입은 나 혼자다 

"쌤 근데 말이야 나 때는 감사할때...."

선임이 라떼를 시전했다. 세상에 이건 50세 할아버지가 쓰는 용어인줄 알았는데 이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계정이...#$#실재성이....$^#상ㅁ무&임이 ㄹㄹ#ㅎ세서$%#"

뭐라고 하는지 점점 안 들린다. 아 나 술 못 먹는데.

빨갛게 달궈진 사람 얼굴을 보고도 안색 하나 안바뀌고 빼맥(빼갈+맥주)를 주는 이 녀석은 멀쩡해 보이지만 벌써 사람이 아닌건가 

"흐하하하하"

누구의 웃음소리인지도 구분이 안 가지만 그래도 모르겠다. 오늘은 달려보자. 

그렇게 퍼마시길 8시간째 

난 다음 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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