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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신입회계사 Part 3. 첫필드

웹소설: 55세신입회계사

by 점쟁이회계사 2023. 9. 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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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은 언제나 버겁다. 특히 나처럼 재수 안좋은 사람들에겐 더 힘들다. 다른 잘 나가는 동기들은 벌써 대기업들 중간감사니 용역을 나가 있는데 나 혼자 11월말 법인 감사를 나가게 생겼다.

아니 세상에 무슨 결산을 11월말에 하나 봤더니 쪼오오 그만한 외국계 회사다. 무슨 역사와 전통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다 노는 틈에 진짜 기말감사를 나가게 생겼다 

같은 회계사인데 여기서도 줄 세우는 게 훤히 보여 입사 후 속 한편이 편하지 않았었다. 동기중에 학벌 좋고 영어 잘하는 사람이 잘 나가는 건 둘째치고 능력 없는데 이쁘다는 이유 하나로 선발되어 나가는 것을 보면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아는 형님에게 들어보니 이번에 블라인드 테스트 때문에 출신 대학교를 못봐서 영어실력이랑 외모를 더 볼 수 밖에 없다고 하던데 와 이러면 더 역차별아닌가. 어쩌라는거지 나는 뭐 둘 다 해당이 안되는데 

<<야야야 기분이 왜 이래, 아우 우리 육체의 주인께서 무슨 일이실까 ㅋㅋㅋㅋ>>

"아 몰라요 형 만난 것도 당황스러운데 전 이번주부터 11월말 법인 감사나가야 해요"

<<아 그게 뭐 대수여. 별거 아냐 형이 해봤더니 괜찮아. 그리고 남들 안 하는 경험은 무조건 득이 되. 특히 그 경험이 힘들 경우엔 더 그렇지 >>

주말동안 알았는데 혼잣말이 아니라 속으로 생각하는 경우에도 형과 대화가 가능했다. 지하철 내내 심심할 틈이 없었다. 다만 형이 너희 시대의 음악은 어떤지 들려달라고 하도 보채는 통에 너뷰트 뮤직으로 음악을 30곡은 들으면서 간 것 같다. 

<<야 이것 좀 봐. 동태지가 아니라 서태지로 되어 있네 ㅋㅋㅋㅋㅋ>>

이 형 다른 것은 다 몰라도 호기심 하나는 정말 많은 사람이다. 이 세계와 저 세계의 차이에 대해 음악 뿐 아니라 스마트폰을 통해서 계속 질문을 한다. 그렇게 알아낸건 형의 세계와 내 세계는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다는 점. 유명인사나 법인의 이름만 살짝 다른 점. 그리고 시차가 약 5~7년 정도 난다는 점이다. 형의 세계가 더 미래다. 형의 세계를 참고해 투자를 하려고 했으나 100%똑같은 우주가 아니기에 기대는 접었다

<<그래서 형이 말하잖아. 너 나이 때 적립식으로 선진국 주식이랑 채권을 같이 사야 한다니까. 한국 주식만 아무리 사봤자 상관계수가 이쁘게 안 나온다고~ 고점 저점 따지지 말고 그냥 사 모으고 존버하면 되요>>

이상한 주식 이야기가 나와 계좌인증을 할 때 쯤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1시간 30분이 걸려 오는 출퇴근 길 내내 라떼 잔소리를 들었다.

"형 아 이제 그만 나 일해야 해"

<<아잇 아직 필드도 안 왔으면서 ...그래서 내가 씨트코인을 300원에 샀는데...>>

뭔가 저 쪽 우주에선 누가 입을 막으라고 했었나 보다. 말 못한 한을 내게 푸는 것 같다. 하긴 손발 없고 털 수 있는 것은 입 뿐이고 그마저도 나만 듣고 있으니....하고 이해하고 짐을 쌌다. 멀리서 저번 주 그 선임이 보인다 

"아 쌤 잘 들어갔어요 ㅎㅎ 준비는 다 했고?"

"넵 전기 조서랑 보고서도 다 준비했어요"

"욜로라 프로그램(감사조서 작성 프로그램)도 다 깔고?"

"아 넵 OJT도 다 받아 놨습니다"

"ㅇㅋㅇㅋ 별거 없는 회사야 우리 둘이면 그냥 편하게 할테니 걱정 마시고"

걱정은 너 때문에 밤에 술 먹는 거가 문제야...라고 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삼켰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열심히 해야지 그리고 저 사람도 뭐 잘해주는 것도 많은 고마운 사람 아닌가 

 

<<저 새끼야? 너를 다중우주로 중첩시킬때까지 술 쳐먹인게?ㅋㅋㅋㅋㅋㅋㅋㅋ>>

"아우 그래도 좋은 사람이에요"

<<그래 너에게 이 형을 붙여줬으니 은인은 은인이지>>

 

선임은 익숙한 듯 회사 앞에서 택시를 잡고 필드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릴 때 법카로 결제를 하시는데 ...우와 신입인 나에게는 그 모습조차 개간지였다.

<<회계사가 이게 좋아. 입사 5년도 안되서 법카 쓰는 기업이 어디 흔한가>>

"형은 상무였다고 했나? 법카 겁나 썼겠네?"

<<형 장난 아니었지. 내가 혼자 1년에 1억을 쓴 적도 있는데>>

"우와 1억..."

<<부러운거 아니다. 내가 술 쳐맥이기만 했겠니 나도 맥임을 당했지ㅋㅋㅋ>>

 

 

필드에 도착하자 회계팀 직원이 나와서 회의실로 인도를 해준다. 노트북을 피고 이메일을 조금 보고 있었는데 40대 여성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사각 뿔테에 적당히 새하얀 살집이 두툼이 있는 ....팀장급 포스의 여성이다. 외국계 회사라 스타일도 좀 다른데 구두는 꼬장꼬장한 깜장색 구두를 신고 있어 걸을 때마다 또깍 또깍 소리가 귀를 내리쳤다 

보통 내가 만난 클라이언트(고객)들은 처음부터 "안녕하세요 회계사님"인데 이 분은 얼굴이 굳어 있다.

뭐지 내가 뭐 실수 했나?

 

"회계사님 잠시 이야기좀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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